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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희두의 청터뷰(9)] 조수황
청년문화포럼 조회수:449
2018-12-28 14:56:46

국악은 기성 문화라는 편견을 깨준 한 청년이 있다. 현재 국가무형문화재 이수자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청년 '조수황' 님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는 아주 어린 시절 시작한 '국악의 길'을 단 한 번도 의심해본 적 없다고 한다. 본인의 삶이 곧 판소리와도 같다는 이유를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건대입구 한 카페로 향했다.

 


ⓒ  '삶이 곧 판소리'라는 청년 '조수황'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판소리를 전공하고 있고요.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춘향가' 이수자, 한국음악협회 정회원, 사)남도민요 보존회, 만정 김소희 판소리 선양회 정회원 그리고 청년문화포럼에서 재능기부위원을 맡고 있는 소리꾼 조수황이라고 합니다."

 

많은 분들에게 '소리꾼'이라는 분야는 생소할 거 같아요.

"국악이 대중에겐 굉장히 생소한 장르예요. 저는 현재 판소리를 전공하고 있는데요. 판소리는 춘향가, 적벽가,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 이렇게 5가지가 있어요. 5개를 다 할 줄 알지만 저는 그중에서 '춘향가'를 메인으로 하고 있어요. 판소리라는 장르는 고유 전통 음악, 성악 장르라고 보시면 될 거 같아요."

 

정말 독특한데 어쩌다 지금의 삶을 살게 되었나요.

"집안에 '인간문화재' 선생님이 계셔서 영향을 받다 보니 자연스레 이 길을 걷게 된 거 같아요. 원래 부모님께선 검사를 시키려고 하셨는데, 그 뜻을 꺾고 11살 때 정식으로 입문했어요. 이후로 지금까지 문화재 이수자로서 후계를 잇고 있습니다."

 

부모님의 저항을 어떻게 이겨내셨는지 궁금하네요.

"부모님께서 굉장히 엄하신데 제가 음악을 정말 좋아해서 미쳤어요. 덕분에 아버지께 사랑의 매도 많이 맞았죠(웃음). 어린 시절 장난감으로는 부채를 좋아했고, 친구들은 애니메이션을 볼 때 저는 국악한마당을 보면서 자랐어요. 거기서 나오는 판소리, 민요, 국악 이런 곡들을 입으로 계속 흥얼거렸대요. 진도아리랑이 나오면 저도 '아리 아리랑~' 이렇게 흥얼거렸는데 그럴 때마다 사랑의 매를 받았어요. 어린 마음에 무서워서 울기도 했는데, 아버지 나가시면 금세 또 잊고 아리랑을 흥얼거렸어요. 유치원 때부터 학예회 같은 걸 하면 빠지지 않고 국악을 했던 기억이 나요. 결국 어머니께서 아버지를 설득하셨지요. 대신 좋은 학교(국악중, 국악고, 서울대) 코스를 조건으로 거셨죠. 소위 엘리트 코스인데 이게 하늘의 별따기예요. 아버지께선 당연히 합격할 줄 모르고 말씀하신 건데, 제가 피나는 노력 끝에 결국 합격해서 두 손 두 발 다 드셨대요."

 

아직 어리지만 인생이 한 편의 드라마 같네요. 큰 영향을 받은 사람을 뽑아보자면.

"크게 세 분이 계세요. 우선 남도민요 준인간문화재인 저희 '이모님'과 인간문화재이신 '이모 할머님'이에요. 그리고 현재 제 스승님 '신영희 선생님'의 영향을 크게 받았어요. 저는 제 삶이 곧 판소리라고 생각해요. 그러다 보니 가장 크게 영향을 주신 분이 스승님이시라 절대 빼놓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희 부모님께도 정말 감사드려요."

 

지금 무척 행복하시겠어요.

"정말 만족해요. 국악을 처음 접한 게 2~3살이었으니 그때부터 남도민요를 시작했죠. 약 21년째 국악을 하는 중인데 저는 단 한 번도 국악을 의심해본 적이 없어요. 후회한 적도 없어요. 이건 그냥 제 운명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그렇고 죽을 때까지 이 길을 걸어갈 거예요(웃음)."

 


ⓒ 신영희 선생님과의 수업시간 / 어릴 적엔 수업이 너무 무서워서 우황청심환을 먹을 정도로 긴장했다고 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다면.

"제 마음을 진하게 울리는 게 춘향가 이별가 중에 '갈까부다'라는 대목이 있어요. 춘향이가 이몽룡을 보고 싶어서 '천리라도 만리라도 따라가지, 바람도 쉬어 넘고, 구름도 쉬어 넘는 동설령고개가 있어요. 우리님이 왔다 하면 나는 발 벗고 아니 쉬어 넘으련만 어찌하여 못 가는고'라는 가사거든요. 은하수를 가운데 두고 견우성과 직녀성이 떨어져 있는데, 그 광경을 비유하면서 본인은 무엇이 막혔길래 이몽룡 도련님을 이다지도 못 보는고 하면서 우는 부분이 엄청 찡해요."

 

저번에 공연을 직접 보니 굉장한 실력을 가지신 거 같던데요.

"보통 득음했다고 하잖아요. 저는 그런 게 없다고 생각해요. 예술은 끝이 없어요. 예를 들어 내가 바람소리를 내면 바람 부는 거 같아야 하고, 물소리 내면 동물들이 물가인 줄 알고 와야 하는데 그런 경지는 없다고 봐요. 그건 전설 속에서 가능한 이야기고, 그런 레벨을 향해 가다가 생이 끝난다고 생각해요. 모든 건 음악을 완성시켜가는 과정이라고 봐요. 완벽한 건 죽을 때까지 완성시킬 수도 없어요. 저희 스승님께서도 말씀하신 건데 하물며 제가 정식으로 입문한 지 아직 13년 째인데 뭘 알겠습니까."

 

공연할 때 어떤 디테일에 가장 신경 쓰시나요.

"우선 '가사 전달'이요. 그래야 감동을 받을 수 있으니까요. 둘째로는 '제 감정을 음에 담아서 실감 나게 내보내는 것'이에요. 세 번째가 그 가사에 맞는 '제스처'에요. 사실 테크닉이나 이런 건 추후에 기본적으로 수반되어야 하는 것들이라 봐요. 판소리 가사를 표현하는 방법은 정말 다양해요. 사람마다 느끼는 감동이나 감정이 제각각이기 때문이죠. 결국 '어떻게 해야 많은 대중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가'를 연구하는 게 키 포인트인데 아직 저는 그걸 찾는 과정이에요. 물론 예술이 대중에 의해 좌우되기 하지만, 결국 저만의 소신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항상 상호 간의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 중이에요."

 

결국 모든 건 상대적이지만, 그 안에서도 항시 '자기다움'은 찾아야 한다는 의미라고 느껴집니다. '자기다움'이 뭐라고 생각하시는지.

"저는 '본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거'라고 봐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남의 시선을 의식할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거기서 벗어나 내 목소리를 오롯이 내는 것, 내가 하고 싶은걸 하는 것이 저는 '자기다움'이라 생각해요. 예를 들어 저는 '이 음악을 통해서 대중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를 저만의 목소리와 방법으로 이야기하는 것'이죠. 이렇게 저만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게 저의 자기다움이라고 생각해요."

 

아까 잠시 이야기 나왔는데 '인간문화재'가 뭔지 궁금해하시는 분들도 계실 거 같아요.

"1960년대 당시 문화재 법이 만들어졌어요. 그때 처음으로 판소리가 '중요 무형문화재'라고 인정받았거든요. 정확히 말하면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예능보유자'라고 불러요. 무형에는 기능과 예능이 있어요. 기능은 도예나 이런 거고, 예능은 부르는 걸 뜻해요. 판소리는 예능에 들어가기에 그 예능을 보유했다고 해서 '예능보유자'라 부르는 거예요. 판소리는 형태가 없으니 '무형문화재'에 속하는 거고요. 그걸 분야별로 총 한 명만 뽑아요."

 

설마 세대 별로 딱 1명만 뽑는 건가요.

"네. 현재는 무조건 한 명이예요. 문화재는 본인 제자들 중에서 '내 예능을 잘 전수받았다. 다음 문화재로서 손색이 없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전수교육조교'라고 준문화재로 지정해요. 준문화재가 되려면 기본적으로 '이수자'가 되어야 하고요. 복잡하죠. 쉽게 말해 '전수자'가 3년 지나야 '이수자'가 되고, 그로부터 5년이 지나야 '전수교육조교' 기회가 주어지고 그 후에 '문화재'가 되죠. 절대 아무나 인정해주시질 않아요. 자신의 예술을 정말 최고로 끌어올렸다 하는 사람만 이수자로 지정해주시죠. 저희 선생님 문하 제자들이 정말 많은데 저는 이수자 15명 중 한 명이예요."

 


ⓒ 무대에 오르기 전 항상 적절한 긴장감을 유지하려고 마인드 컨트롤을 한다고 한다. 


이렇게 보니 아직 갈 길이 머네요. 추천해주실 만한 책이나 영화가 있나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라는 소설이랑 <판소리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추천해요. 우선 <개미>라는 소설은 참 많은 걸 돌아보게 하는 책이에요. <개미>에는 인간이 아무리 날고 긴다고 해도 결국 자연이란 거대한 존재 앞에선 개미보다도 못한 존재일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와요. 항상 겸손함을 잃지 않도록 각인시켜준 책이에요. <판소리란 무엇인가>라는 책은 판소리의 역사가 정말 잘 나와있어서 추천드리고요."

 

본인의 장단점이 뭐라고 생각하시는지.

"자신감, 추진력, 욕심. 이 3가지가 장점이라 생각해요. 단점은 조금 예민한 거요. 아무래도 감수성이 풍부하다 보니 성격 자체가 예민하고, 한 번 상처 받으면 앙금이 조금이라도 남아있어요. 하루빨리 고쳐야 하는데 제가 너무 완벽주의자가 되려고 해요.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아 저 사람 참 예민하다' 이런 말을 많이 하죠."

 

서울대 음대 학생회장을 하신 적도 있다고 알고 있는데 어땠나요. 

"음악활동을 왕성하게 해야 할 시기인데 학생회도 하다 보니 제약이나 고민이 많았어요. 어쨌든 외적으로는 800명 학우 대표라고 앉혀놨는데 조금이라도 잘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저는 음악계 내에 존재하던 부조리함을 없애려고 노력을 많이 했던 기억이 나네요."

 

지금은 그런 부조리함들이 없어졌나요.

"제 입으로 말하기 민망한데 그래도 상당 부분 개선된 거 같아요(웃음). 모든 것엔 시발점이 있다고 보는데 대학이란 곳에서 저는 사회생활의 첫 시작이라고 보거든요. 대학 시절이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해서 그런 부분에서 고민을 많이 가졌죠. 어떻게 해야 좋을까. 예를 들어 술을 강권하는 문화라든지 이런 것들을 상당히 개선하려고 노력 많이 했습니다."

 

저항도 만만치 않았을 텐데 정말 대단합니다.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이 있다면.

"일단 기성세대 분들께 말씀드리고 싶은 건 어쨌든 저희는 뒤를 따라가는 사람들이거든요. 그분들에 의해 사회가 변하고, 결국 저희가 그런 힘을 가질 때는 그분들과 비슷한 나이라든지 위치가 되어야 하잖아요. 그러니 '이런 길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잘 닦아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다' 말씀드리고 싶어요. 같은 세대 청년들에게는 저에게 인상 깊었던 말씀을 하나 들려드리고 싶어요. 지금은 돌아가셨는데 심청가 문화재인 '소정 성창순 명창'님께서 제가 판소리를 한다고 하니까 해주신 말씀이에요. '사람이 우물을 하나 파려고 땅을 팔 때, 여기 물 안 나온다고 여기저기 파면 이도 저도 안 된다. 한 곳만 계속 파면 그게 쓰레기든, 돌멩이든, 금은보화든, 물이든 뭐라도 나온다. 그러니 한 우물만 파라' 이 말씀이 정말 인상 깊게 남았어요. 누가 뭐라 하든 본인이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절대 포기하지 말고 꿋꿋하게 밀고 나갔으면 좋겠어요. 물론 다양성을 추구하는 건 굉장히 중요한 일이에요. 저도 다양한 걸 경험했는데 그런 게 쌓여 오늘날의 저를 지탱해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행복한 일을 했으면 좋겠어요. 남의 시선에 강요받지 말고 본인이 하고 싶은걸 할 때 비로소 '자기다움'을 말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이 세상은 살아남는 사람이 이기는 거잖아요(웃음)."

 

<조수황>

-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춘향가' 이수자

-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제18,19,20대 학생회장

- 제30회 동아국악콩쿠르 판소리 학생부 금상

- 제32회 동아국악콩쿠르 판소리 일반부 금상

- 제17회 숲쟁이전국국악경연대회 일반부 종합대상 (국무총리상)

- 인스타그램 @cho.suhw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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